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았다. 책을 읽기 전, 인터넷에 제목을 검색해보고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홀든이 퇴학을 당한 뒤 집에 가기 전 며칠 간의 일탈을 다룬 내용으로, 방황하는 미국 청소년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는.
내 머릿속의 미국, 일탈 속에 살아가는 방탕한 청소년의 조합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을까.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그의 일탈이 대단하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든의 행동은 철저한 방황과 불안정함 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단순히 규칙을 어기거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회의와 허무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퇴학을 당한 후, 기숙사를 떠나 뉴욕으로 향한 홀든은 어른들의 세계를 탐색하면서도 그 속에 녹아들지 못한다. 그는 호텔에 묵으며 술을 마시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그 누구와도 진정한 연결을 느끼지 못한다. 매춘부를 부르지만 결국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뿐이며, 예전 친구인 샐리와 만났지만 결국 다투고 헤어진다. 심지어 오랜 친구인 앤털리니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그마저도 신뢰할 수 없는 어른처럼 보이면서 다시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홀든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방황이 아니다. 그는 점점 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며, 결국 어린 동생 피비를 찾아간다. 피비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홀든은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잠시나마 평온함을 느낀다. 마치 어른이 되기 전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듯한 모습이다.
결국, 홀든의 방황은 단순한 청소년의 반항기가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순수한 내면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자신의 이상 속에서 어린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을 덮으며, 나는 홀든이 과연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결국 성장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영원히 방황하는 청춘으로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