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 나가며 중반까지도 이 책은 어떤 책인가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다.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진리를 찾아가는 소년의 일대기인가 생각했고, 중반부에 가까워서는 제인 부인 사망의 원인을 찾는 추리소설인가 생각했다. 때로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평전일까 싶다가도 중간 중간 나오는 우생학에 대한 얘기와 수용소에 대한 얘기로 우생학에 매료됐던 과학자들을 꼬집는 비판서일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생물학자인 아버지로부터, “이 세계는 아무 의미도 갖지 않으며, 너는 개미와 똑같다”는 말을 듣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생의 답을 구하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느낀 감상들과 깨달은 점을 적은 자전적 소설이다.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데이비드는 수집을 좋아하는 아이에서 생물들을 분류하면서 어느날 정부의 스카우트를 받고 미국에 있는 미지의 어류를 찾는 일을 하며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5분의 1정도를 그의 팀이 찾아내게 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스탠퍼드 부부의 제안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된다.
학장이 된 이후에도 데이비드의 안식처는 물고기였다. 물고기들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였다. 지진으로 표본이 든 유리병이 모두 깨졌을 때도, 데이비드는 절망하는 대신, 물고기에 이름표가 떨어지지 않도록 이름표를 붙인 바늘을 찔러 넣었다.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 (Agonomalus Jordani). 조던이 직접 이름붙인 물고기 중 하나로, 직역하면 모서리가 없는 조던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면 사이의 경계를 찾을 수 없는 이 물고기가 데이비드는 자신을 반영한다고 느꼈다. “자격 없는” 자들의 불임을 종용해 우등한 유전자들로 세계를 채우자며 우생학의 보급에 앞장섰고, 1차세계대전으로 치닫던 말년에 세계를 돌며 전쟁의 위험을 경고한 공로로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등한 유전자들이 전쟁에 나가 죽으면 열등한 유전자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걱정하며 한 일이었지만.
물고기를 수집하고 이름 붙이는데는 아이처럼 순수했지만, 물고기를 잡는데 도와준 남미나 일본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 스탠퍼드 부인의 죽음에 누군가는 확신을 가질 정도로 미심쩍은 행동이 많은 점이 데이비드의 경계를 찾을 수 없는 삶을 짧게나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기대했던 데이비드의 삶에서, 데이비드가 추구하던 질서에서 삶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다윈과 혼돈에서 답을 찾았다. 다윈이 발견한 생물의 진화는 우등한 것이 살아남고, 열등한 것이 도태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알 수 없는 장단점들이 생물에 존재해 살아남게 해주는 것이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기린의 긴 목이 다른 생물들 사이에 경쟁력을 갖게 해 준 것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좋고 나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저자가 느낀 삶은 불편해 보이는 기린의 목에서 장점을 찾는 것처럼, 서로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권력을 가졌지만, 제자의 불륜을 목격한 사서를 동성애자 병원에 감금시키겠다고 협박하거나, 스탠퍼드 부인의 죽음에 연관이 되었거나 장애인들의 불임수술을 종용한 데이비드의 생애를 부정하려는 듯,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꺼낸다.
분기학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어류는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물고기들을 어류라고 묶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관점에서 편리하게 보려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산에 사는 사람, 소, 쥐, 강아지 등이 어느 날 산에 살기에 유리한 격자무늬가 피부에 생겼다고 해서 격자무늬 사람과 격자무늬 소를 같은 종류로 묶어버리는 것 같은 비약이라고 한다. 실제로 연어와 폐어, 소 중에 가장 관계없는 것을 찾으라면 대부분 소를 말하지만, 분기학적 관점에서는 연어이다. 폐어는 폐와 같은 조직으로 호흡하고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갈 때 폐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후두개가 있으며 심장도 소와 비슷하게 생긴 점에서 연어가 정답이다.
저자는 분류와 혼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롭게 깨달은 양성애자라는 자신의 분류에 대해 말하면서 이 책을 쓰는데 영감을 준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을 추천하며 책을 끝낸다.
앞에서 말했듯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성장소설 같기도, 추리물 같기도, 평전 같기도, 비판문 같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을 넘겨보니 이 모든 장르가 담겨있는 자전적 회고 소설이었다. 저자가 찾은 삶의 의미를 과학저널기자라는 저자의 직업답게 과학적 사실들과 저자의 시각을 버무려 담담하게 풀어낸다. 분류가 아니라, 혼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