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글이다. 줄거리는 한 노인이 커다란 물고기를 잡고, 그 물고기를 데려오면서 상어떼가 물고기를 물어뜯어 도착했을 때에는 물고기의 잔해만 남고 노인은 잠에 들어 버리는 내용이다.
헤밍웨이는 이러한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볼 수 있는 내용 속에서 3달여간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때의 마음과, 낚시대를 입에 문 채 사흘이 되도록 포기하지 않는 물고기를 보며 느끼는 어부의 감정, 상어 떼와의 사투를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굵직한 문체로 써나간다.
한국외대 김욱동 교수님이 번역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헤밍웨이가 바에서 술을 마시다 옆에 앉은 노인이 해준 얘기를 듣고 소설로 옮긴 실화 바탕의 글이라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내용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굉장히 축약하자면 노인이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이다.
“저에게는 신앙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기를 잡게 해 주신다면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열 번씩이라도 외겠습니다. 만약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님을 참배하기로 약속드리죠. 정말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상은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힘이 빠지고 한 손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늙은 어부가 역사를 쓰려는 듯 배 위에서 잠과 식사를 해결하며 사흘 넘게 큰 덩치의 물고기와 싸우는 묘사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느껴진다.
책의 말미에는 역자의 작품 해설이 추가되어 있다. 이 소설 “노인과 바다”는 저자가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한 뒤 10년 넘게 계속되던 정체기 끝에, 몇몇 비평가들이 “헤밍웨이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할 정도인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 출간되자마자 비평가들과 작가들, 독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일부 사실주의 계열 비평가들에 의해 노인이 사흘간 거대한 청새치와 씨름을 하는 것은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며, 상어에 대한 묘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한 개인의 내면에서 거칠게 일어나는 소리라는 관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은 헤밍웨이가 의도한 것이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 역자의 시각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한국전쟁과 소비에트 정부의 원자탄 개발, 간디의 피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등 동서간 냉전을 포함한 시대적 분위기가 최악일 때였다. 산티아고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고기잡이에만 초점을 맞춘다. 개인의 내면세계와 문제와 집중하기 위함일 것이다.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노인과 바다와 관련해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은 현실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루었다고 평했다. 노인과 바다를 쓴 시기는 국제적으로는 사건사고가 심화되는 시기였고, 헤밍웨이 개인적으로는 크고작은 사고와 쉰이 넘은 나이로 육체적 노년을 느낌과 동시에 기나긴 정체기를 지나가는 예술적 정체기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 아직 살아있음을, 건재함을 과시하며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끝내 이겨낸, 하지만 지나는 상어떼에게 어느정도의 희생은 피하지 못한 산티아고의 낚시 이야기는 헤밍웨이 자신에게 바치는 승리의 찬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