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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고

by Bookers_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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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이어령 선생이 한국을 떠나 일본 교토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딸의 문병을 위해 하와이에 들르고, 서울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본인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때로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교회 나오라는 주위의 얘기들을 때로는 흘러넘기며, 때로는 웃어넘기며 지나쳐왔다. 성경을 읽기도 하고, 기독교적인 철학과 사상을 여느 기독교인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 스스로 종교와는 담을 쌓으며 지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던 저자가 하나님을 만나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는,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망막 분리로 눈이 안보이게 될 거라는 딸의 문병을 간 하와이에서 딸의 제안으로 작은 교회에 갔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딸의 빛을 가져가지 않으시면, 남은 삶을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국에서 치료받는게 하와이보다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서울로 오게 되고 서울 병원에서는 하와이에서 오진이 있던 것 같다며, 망막 분리가 아니고 시력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망막 분리라고 생각했고, 진단도 받았었기에, 아니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기적이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우연이고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라고 했는데, 저자와 가족들에게는 기적일 것이다.

그 후, 새벽예배에 가는 딸에게 저자는 "아빠 세례 받을게" 라며 자신도 모를 소리를 질렀고, 그 다음 날 이어령 선생이 세례를 받을거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딸이 새벽예배에서 눈물로 간증한 것이 전해진 것이다.

세례를 받을 때에는 번잡한 것이 싫어 온누리교회의 일본 집회를 빌어 호텔에서 간단히 받고자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는 하나님을 믿은 다음부터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인도하는 것같이 자신이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회고했다.

책의 중반부까지, 저자는 교회를 다니게 된 과정을 다루었다면, 이후에는 신앙이 도전을 받은 내용들, 그 가운데 더욱 단단해진 신앙을 다루었고, 마지막 장에는 딸 이민아 목사의 간증과 같은 글로 채워진다.

요약하자면, 한 문학자가 기독교인이 되게 되는 내용이지만, 저자의 동서양과 고금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지식들과 이를 하나로 엮어 풀어가는 문체와 글들, 마지막 이민아 목사의 간증으로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읽어 내려갔다. 때로는 저자의 농담에 피식 웃기도 하고, 때로는 성경을 바라보는 저자의 통찰력에 무릎을 치기도, 해박한 지식에 놀라기도 하며,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아래는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적어보았다.

아이들과 공을 차고 놀 때에도,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리며 혼자 누워 있을 때에도 내가 손을 뻗기만 하면 손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목숨 속에, 나의 숨결 속에 그분은 계셨습니다.

 

'살기죽기'라고 하지 않고 '죽기살기'라고 말하는 사람들, "To be or not to be" 햄릿 대사도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라고 번역하는 사람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인이야말로 메멘토 모리의 철학적 종교적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틴토레토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아멘이라는 말이 쉽게 입에서 흘러나올 수 있었던 나 자신에게 조금은 당황했고 그런 변화에 대해서 불안해했습니다.

 

불가능한 스케줄을 이리저리 메우고 변경해서, 그것도 왜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가를 말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의 모임에 출석하려고 비행기를 타게 된 것입니다. 내 뜻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이끌지 않고서야, 들리지 않는 무슨 소리가 날 부르지 않고서야 다시 서울에 올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딸에게서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나이다'

 

딸의 문병을 갔던 하와이 교회에서 저자는 처음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기적처럼 딸의 눈은 시력을 잃지 않아도 되었지만, 저자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셔도 언젠가는 누구나 죽게 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진짜 기적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과 한국의 기독교적 차이부터 까마귀로, 낙타에서 리더십으로 다시 하이쿠로, 이어령 선생의 글은 시대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옮기며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때로는 담담한 문체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예수님 안에서 풀어내는 저자는 타고난 "문학하는 사람"이다. 또한, 지성과 영성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아가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다. 종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편하게 읽으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니,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저자가 잠시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성경을 펴고 위로를 받은 성경구절로 글을 닫는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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