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있다.
첫 번째 대화편인 에우티프론을 읽고 느낀점을 적어본다.
복잡한 말들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현혹시켜 불경하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경건함을 알기에 종을 죽인 아버지를 고소했다는 에우티프론을 만나 얘기한 경건함에 대한 대화를 기록한 글이다.
처음 읽어본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이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버틀런드 러셀의 스승이기도 한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기대를 읽고 펼친 에우티프론에서 서양철학을 꿰뚫는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울리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우티프론과 대화하는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말꼬리 잡기와 비꼬기의 달인이었다.
잘못한 아버지를 고소한 것이 경건한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경건함이 무엇인지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신에게 사랑받는 행위가 경건이라고 말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신들이 싸우는 일도 있으니 어떤 신에게 사랑받는 행위가 다른 신에게 사랑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며, 아버지를 고소하는 것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계속 파고든다.
내가 에우티프론이라면 어땠을까.
하인을 죽인 아버지를 고소하는 것. 관점에 따라 옳은 일일 수도, 옳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인의 가족 입장에서는 고소해야 좋을 것이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고소하지 않아야 좋을 것이고, 다른 하인들과 가족들을 이끌며 규율을 책임지는 가장 입장에서는 아버지라도 고소를 함으로써 집안의 규칙을 엄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키워주신 아버지의 아들의 입장이라면 하인의 가족에게는 다른 보상을 하더라도 고소까지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경건' 이라는 단어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몰아붙이는 소크라테스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조금은 흑백논리적인 대화도 느껴졌다.
예를 들어, 에우티프론이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을 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이 사랑하는 것인가.
둘은 경건한 것은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데, 그렇게 딱 나눠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경건한 것들, 예를 들면 정성들인 의식이나 정갈한 음식 같은 것들은 (신들이 있다면) 신들이 사랑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보기에 경건하지 않음에도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몇몇 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어떤 종교나 문화권에서의 조금 혐오스럽거나 지나친 의식들도 신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행해진다고 말한다.
이토록, 글 전반에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개와 대화, 그리고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에우티프론에 대한 몰아붙임이 조금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인과 성공한 사람들, 학자들이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즐겨 읽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을 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조금 더 읽어보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